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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정광원, 주미숙 선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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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덕원교회 조회905회 작성일20-04-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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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님들께,

 

잉흐태붕 형제는 어릴적 부터 기관지 천식을 앓으며 병치레가 잦았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하여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큰누나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 두게 하였습니다. 큰누나의 갖난 아기를 돌볼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렇게 문맹자가 되었습니다.

            군대에서 그는 호흡조차 불가능할 지경의 심한 기침과 함께 쓰러졌습니다. 심한 폐질환으로 더이상 군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의과사 제대를 했습니다. 제대 후 젊은 날의 대부분을 기침과 함께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치료 방법이 없다며 의학적 사망선고를 내렸습니다. 같이 입원해 있었던 폐질환자들이 하나 둘 죽어갈 때 다음은 내 차례이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죽음은 목을 조이듯이 강하게 밀어부치다가도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매번 비껴지나 갔습니다. 몸 상태가 괜찮다 싶을때는 어머니의 생활 연금 돈을 끌어다가 담배 연기 빽빽한 도박장에서 소망없는 인생을 탄식했습니다. 젊음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함께 질환을 알았던 마을의 병상동기들의 기침 소리가 모두 땅속에 묻혔습니다. 사람들은 궁금해 했습니다. 다른 페질환 자들에 비해 상태가 더 안좋았던 사람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을 보면서 의사들도 의아해 했습니다.

            한 동네에서 함께 자랐던 ‘바트에르튼’ 이라는 친구가 어느날 자기 집을 찾아왔습니다. 바트에르튼은 진리를 찾았다 했습니다. 그리고 난생 처음 들어보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죄와 영원한 형벌에 대해, 영생과 구원에 대해 증거하며 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잉흐태붕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삶이 힘들면 외국종교에 빠졌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바트에르튼 친구의 분명하고 확신있는 말들이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또한 항상 술에 찌들어 있고 아내를 폭행하고 음란을 일삼던 친구의 변화된 삶이 그의 말에 강한 힘을 실었습니다.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오히려 점점 확신이 견고해져 가고 주변 가족, 친척들까지 그의 믿음이 전염되어 가는 것을 보며, 틀림없이 심상치 않은 무언가 있다 싶었고 결국 바트에르튼을 찾아갔습니다.

            바트에르튼 형제는 잉흐태붕에게 3개월 동안 연대기 성경 공부를 통해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잉흐태붕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하나님의 진리에 흠뻑 젖어들었고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압도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그의 마음과 삶에 모셔들인 후 그 역시 친구 바트에르튼처럼 변화되었습니다. 도박과 술은 더러운 배설물처럼 손을 대서는 안되는 역겨운 것들이 되었습니다. 폐까지 느껴지는 영하 30-40도 새벽 추위도, 조금만 걸어도 숨이 목까지 차오르는 그의 폐의 상태도 새벽 기도 모임을 비롯한 모든 모임 참석에 대한 열망을 꺽지 못하였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죽었어야 할 목숨, 꺼져가는 심지처럼 한숨에 잦아들어야할 목숨이 그렇게 지탱되었던 것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과 주권이셨음을 기억하며 마지막 호흡까지 감사와 경배와 섬김으로 사용하기로 소원하였습니다. 저러다 곧 죽을 거라는 모든이의 염려와 비난 가운데서도 누구보다도 일찍 모임에 나와 예배당 청소하고 의자를 정리하는 그의 섬김을 통해서 교회가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싶은 간절함은 초등학교 다니는 딸을 통해 글을 배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라도 읽지 않고서는 살수 없는 책벌레가 되었습니다.

            구원받고 4년의 생명이 연장되었습니다. 구원받을 즈음에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고 의사들도 가족들에게 죽음을 준비하라 하였는데, 주님께서는 잉흐태붕 형제에게 주님과 교회를 섬기고 아내와 딸 그리고 어머님이 복음을 듣고 구원얻는 축복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2011년 올해 초부터 상태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고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호흡이 더욱 힘들어지고 순간 순간 숨이 끊어질듯 하였습니다. 이제는 주님께 갈때가 되었나 싶었습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믿음에 굳게 붙어있으라 부탁하며 교회에도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자며 작별 인사를 위로하듯 나누었습니다. 형제의 얼굴에 짖게 깔려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며 저는 형제 없는 운드르항 모임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형제가 이제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형제의 소망이셨던 주님께 나아 가는 은혜의 때를 조금 연장시켜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형제를 편히 놓아줄수 없었습니다. 형제에게 히스기야 왕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켜 주셨던 주님의 주권과 능력을 상기시키며 주와 교회를 위해 형제가 좀 더 살았으면 좋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함께 매달리며 기도하자 했습니다. 그러자 형제가 그러지 않아도 얼마전에 바트에르튼 형제가 찾아와서 똑같은 본문의 말씀과 내용으로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자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바트에르튼 형제가 오기 얼마전에 동일한 본문을 읽게 되었고 그 말씀을 읽을 때 마음에 주님께서 히스기야처럼 15년을 더 주신다면 이 땅에서 복음과 교회를 위해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살고 싶다는 소원이 들었고 기도로 주님께 아뢰었다고 했습니다. 형제의 그러한 간증을 들으며 주님께서 형제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실 것 같은, 지금은 형제가 주님께 갈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놀랍게도 형제가 다시 일어섰습니다. 40도를 웃돌며 떨어지지 않던 열은 거짓말처럼 수그러들었습니다. 형제는 다시 새벽길을 가르며 새벽 기도 모임에 제일 먼저 찾았고 그의 섬김은 다시 활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몇달 후 형제는 다시 쓰러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형제를 놓아주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형제가 운드르항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 한국에서 형제님들이 말씀 교제차 방문하셨고 운드르항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초원에서 운드르항 모임 여름 수련회를 갖었습니다. 수련회 중간에 형제님들은 잠깐 틈을 내셔서 잉흐태붕 형제를 심방 하셨습니다. 잉흐태붕 형제는 육신은 꺼져가는 심지였지만 영은 여전히 주님의 사랑과 소망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잉흐태붕 형제를 위로하시고 주님께 은혜와 긍휼을 아뢰는 기도를 마음을 합하여 올린 후 한국의 형제님들은 잉흐태붕 형제의 페 엑스레이 사진을 한국에 가져 가시겠다 하셨습니다.

            형제님들을 통해 운드르항과 울란바타르, 그리고 날라흐 교회들에 수련회, 특별 집회, 심방등으로 주님의 은혜와 하늘 위로가 가득 부어졌습니다. 형제님들이 한국에 귀국하신 후 얼마지나지 않아 형제님들에게서 연락이 오셨습니다. 잉흐태붕 형제님의  폐 엑스레이를 서복주 형제님에게 보여주셨고 형제님께서는 보시자마자 잉흐태붕 형제님을 빨리 한국에 데려와서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하면 살 수 있다며 입국을 서두르라 하셨습니다.

단 시일내에 조속하게 비자 수속이 진행되었고, 각지의 형제, 자매님들의 사랑과 헌신으로 모든 경비가 충당되어 져서 잉흐태붕 형제님이 한국에 오시게 되었고 형제님들의 사랑과 돌봄속에서 모든 검사와 적합한 약물 치료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처음 올때는 기력도 없고 몇 발자국 띨때마다 가푼 숨으로 자주 쉬었다 가야 했던, 잘 먹지도 못하던 상태였는데 주님의 은혜와 형제님의 사랑과 서복주 형제님의 치료와 섬김으로 잉흐태붕 형제의 상태는 눈에 띄게 호전되어 갔습니다. 병명은 기관지 확장증에 폐결핵까지 겹쳐 있었습니다. 만약에 이번에 한국에 와서 검사와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면 채 1, 2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폐는 오래동안 알아온 기관지 확장증 질병으로 겨우 3분의 1정도의 폐 기능으로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폐결핵의 상태는 심각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잉흐태붕 형제 본인 뿐만 아니라 운드르항 모임의 성도들, 가족들 모두를 보호하시기 위해 형제님을 급히 한국에 오시도록 하셔서 치료할수 있도록 귀한 형제님들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잉흐태붕 형제님은 한국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받았고 보고 배우고 간다고 하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김제와 남원까지 내려가는 여정과 여러곳을 다니면서 형제님은 천국을 그려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도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데, 하나님의 사람들의 사랑과 섬김이 이렇게 마음을 벅차게 하는데 영원하신 사랑의 하나님이 아들의 죽으심으로 구원 얻은 후사들을 위해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놀라울까를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주님이 부르신 그날까지, 남은 삶을 한 영혼이라도 더 이 놀랍고 귀하고 실재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수 있도록 주와 복음을 위해 더욱 힘있고 가치있게 살수 있도록 주님께 소원을 아뢰며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잉흐태붕 형제님은 다시 운드르항의 일상에 돌아왔습니다. 한국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주님께서 잠깐 천국을 경험케 한 꿈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천국이 더욱 실재가 되었습니다. 매일 약을 복용하지만, 주님이 오실 그날까지 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병약한 폐로 부족한 호흡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그는 하늘 소망의 공기로 호흡하는 건강한 영적 폐를 가지고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하여 성령과 전도의 많은 열매를 맺는 자로 힘있게 사용될 수 있도록 계속 기도로 함께 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금번 잉흐태붕 형제님의 한국 방문과 치료가 가능하도록 모든 것을 앞서 주관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먼저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귀한 도구와 통로로 드려지셔서 형제 우애와 섬김의 참 모습을 보여주신 형제님들과 기도와 관심과 물질로 함께 해주신 전국의 형제, 자매님들에게 사랑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희들의 받은 하늘 위로와 격려대로 주님께서 형제, 자매님들의 심령과 삶에 가득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감사합니다.

 

몽골의 하나님의 교회들과 잃어진 영혼들을 위하여 함께 동역자 된,

정 광원, 주 미숙, 이레, 진호, 에스더 드림.

2011. 1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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